
환자분들은 종종 미술 치료사인 저를 병상 앞에 앉혀놓고 자기 삶에 대해 얘기하시곤 합니다.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들려주는 말은 “아파 본 사람은 안다”는 말입니다.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, 실제로 아픔을 겪고 계신 분들의 목소리에는 단순한 신체적 고통을 넘어선 심리적, 사회적 고통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.
삶에서 몇 번 마주하기 어려운 이 깊은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실 때, 저는 그것이 단지 고통의 나눔이 아니라, 아픔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진리이자 얻어진 지혜를 나누는 귀한 순간임을 느낍니다. 그 순간만큼은 전적인 경청으로 그분의 이야기에 마음을 다해 응답하고자 합니다.
병원에 들어서는 순간, 그 사람이 어떤 직책을 가졌는지, 얼마나 비싼 옷을 입었는지,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인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. 이전의 삶에서 이룬 것이 다 필요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나의 몸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잃어보고서야 알게 되는 ‘진리’입니다.
그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‘채’를 떠올립니다. 삶을 한 번 걸러내는 인생의 ‘진리의 채’. 투병의 시간은 마치 삶 전체를 그 ‘진리의 채’ 위에 올려 채를 쳐보는 시간이 아닐까요?
명예, 돈, 학벌, 성취 등을 우선시하던 사람들도 아프고 나면 보게 됩니다.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내 몸을 외면했는지, 얼마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는지를요. 그렇게 삶을 한번 쳐보면, 겉으로 빛나던 것은 모두 아래로 떨어지고, 채 위에 남는 단 하나의 단단한 돌. 그것이 바로 건강입니다.
아픔은 잊고 지냈던 삶의 본질을 다시 보게 합니다. 환자분들은 그 채를 통과한 삶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말씀하십니다. “진짜 중요한 게 뭔지,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.”
그 진리를 저도 함께 배웁니다. 아파 본 사람은 삶의 중심을 바꿔냅니다. 아파 본 사람은 그 진리를 다른 이에게 나누려는 넉넉한 마음을 가집니다. 그리고 저는 그 나눔 앞에서 고개를 겸손히 숙입니다.
몸이 곧 삶이며, 건강이 곧 소중한 나의 시간이라는 것. 그 진리를, 아픔 속에서도 잊지 않고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.